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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구름

<ㄷㄷ썰> 고모네

정글구름 2024. 4. 8. 05:17

그 집에서 겪었던 두 가지 일을 쓸 텐데 어느게 먼저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다.


-천장-

초등학생의 어느날.
무슨 날인진 몰라도 가족이 다함께 고모네로 갔다.
밤이었고 몸이 안 좋았다. 감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얘길하고 놀았고 힘이 없던 난 엄마 옆에 겨우 기대 앉았다.
점점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라 고모랑 엄마가 사촌 오빠 방에 들어가 누워 있으라며 이불을 깔아 줬다.

이불 위에 누워 천장을 보니 커다란....원형의 마법진 같이 붉은 그림이 보였다.
그건 천장에 그려진게 아니었다. 희안하고 의심스러워 뚫어져라 보고 있었는데 분명히 천장 가깝게 떠 있는 거였다.
그걸 보고 있는건 나 뿐인 것 같았다.

안쪽과 바깥쪽의 원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제자리에서 돌고 있고 나누어진 칸 마다 알 수 없는 문양이나 외국어 같은 글자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현란한 모양과 움직임들. 그것들 주변에 뭐가 더 있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소리는 들었다. 깔깔거리는 여자애들 목소리..... 뭐라고 떠들어댔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이윽고, 소음과 환영은 회전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저것이 내게로 온전히 내려오면 난 어떻게 될까?
모르겠지만 너무 무서웠다.

몸을 가누는게 다소 힘든 상태였지만 방 밖을 나서려는 엄마와 고모를 필사적으로 불렀다. 그리고 겨우겨우 따라 나갔다.



<거울>

초등학생때. 여름 방학인가에 고모네에서 내내 살았다.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는데 아녔다.
1년에 평균 두번 보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는게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닌데다 상당히 무료했지만 고모부와 고모는 계집애라고 미워하지도 않고... 나에게 잘해주셨다.

고모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붙어 있는 나무 십자가가 제일 먼저 보인다. 고모는 새벽마다 교횔 나가셨고 고모부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7~8시 쯤인가에 돌아오셨다. 집은 8차선인가 6차선쯤 되는 큰 도롯가에 있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건물이라고는 과일가게 뿐 ㅡㅡ......슈퍼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민가는 도로 너머에나 보이는 듯 했다.

집에는 거의 나 혼자였다.
초딩인 나는 존나 할게 없어서 집 거실에 쳐박혀 그리기도 싫은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도 안하는 낮 시간동안 티비를 보다 밖에 나가 도로를 망연히 보고는 다시 집에 들어오는게 하루 일과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지루했던.......... 어휴....

굳이 집밖을 나가는 이유는 말했다시피 개 따분하고 답답해서. 또 하나는 집안에 있는게 무서워서였다.

고모네는 이층집이었고 그다지 넓은건 아녔다.
1층은 주차장 겸, 창고였다. 한켠에는 커다란 개를 키웠다.
나는 심심하면 1층에 내려가 개한테 사료를 주곤 했다. 물릴까봐 가까이는 못 갔지만....
2층은 내부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인테리어를 다크브라운 색의 나무로 하기도 했고.... 햇볕이 잘 안 드는 것도 같았다.

이 집에서 가장 밝은 방은 옷방으로 보이는 화장실 옆 방이었다.
그리고 난 그 방이 무서워서 하루종일을 불안하게 지냈다.

거실 쇼파에 앉아 있으면 그 방이 보인다.
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거나 조금 열려있곤 했다.
티비를 켜놓아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해도 문이 열린 옷방이 신경쓰여서 도통 뭐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밝은데도 무섭다니 참 이상하지.

문을 닫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지만 그럼 지는 것 같아서 잘 안닫았다. 그리고 닫으려면 가까이 가야 되는데 그게 참 무서우니까 아예 집 밖을 나갔다. ㅡㅡ;;
보통은 그림 그리다 말고 방쪽을 본다.
티비 보다가 방쪽을 본다.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그럼 안방이나 오빠방에 들어가 있으면 될텐데 그건 또 안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지고 있는 것 같은 신경전을 매일 매일 했다. ㅡㅡ

어느날은 방안에 들어갔다.
내가 느끼는 이 감각이 도대체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두려웠지. 뭐가 있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곳에 굳이 가는 나.....

다행히도 눈으로 보기엔 별거 없었다.
한쪽 벽면은 옷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 반대벽에는 1인용 침대가 있었다.
문 근처에는 건조대가 있었고 그곳엔 항상 빨래가 걸려있었다.

침대위에 누워도 보고 장롱을 열어도 보고.... 건조대를 가만히 쳐다보기도 했다.
어디서 오는 감각인지 모르는건 아니었다.
옷장에는 세로 길이 30센티 정도 되는 거울이 붙어있었고
귀기는 그곳에서 느껴졌다.
무서워서 보기가 겁이 났다.
만.... 봤다. ㅡㅡ

그저 내 모습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머리를 길게 푼 나.
고모는 이 긴 머리를 딱히 어떻게 해주지도 못해서 그냥 푸르고 다녔다.
거울을 뚫어져라 본다.
난 사실 잔뜩 겁을 먹은 채였지만..... 표정에선 그게 하나도 티가 안난다.
거울.
분명 거울에 뭐가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내 오른쪽 어깨 근처 부근에 뭐가 있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 이상 쳐다보면 정말 뭔가를 볼 것 같다는 감각 때문에 나는 다시 침대에 눕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방 밖을 나선다.
그런 짓을 몇번이나 했다. ㅡㅡ
뭔가 신경이 쓰이면 원인을 없애거나 제대로 파악을 해야지만 신경이 안쓰이잖아.
근데 몇번이나 확인해봐도 파악이 안되서 신경이 계속 쓰였어 ㅡㅡ
그게 나로선 더 스트레스였다.

설령 거울에서 뭘 봤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사라지는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물음표는 안 띄우게 되니까. ㅡㅡ....

집에 혼자 있을땐 그 방에 들어가 버티는게 고역이라서 나중엔 아예 고모가 집에 들어오시면 일부러 방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확실히 덜 무서웠다. 다소 시시할 정도?

결론은 뭐냐고?
.....내가 볼땐 역시 아무것도....없어.
느끼긴 했지.
문 틈 사이로 날 뚫어져라 보고 있는 여자의 기운
젊은 여자였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을때면 머리 길게 푸른 여자가 내 어깨 근처 너머에서 날 보고 웃는 듯한 느낌.
모조리 느낌 뿐이었다.

문 밖으로 나오는 것 같진 않은데
항상 열린 문 틈 새로 고갤 빼꼼 해서 날 본다.
뭐하는 여자야.....
왜 새벽기도 다니고 헌금도 착실하게 하는 기독교인 집안에 눌러 사는 거야 ㅡㅡ.....
일주일마다 교인들이 집에 모여 성경도 읽고 찬송가를 부르는 집에서 왜 안 떠나는건데....
왜 그 방안에 쳐박혀서.... 특히 그 거울에 붙어서....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존나 날 쳐다봐 ㅡㅡ
본거지는 거울인데 나 보려고 일부러 나오는 건가 ㅡㅡ? 내가 내한 가수도 아니고 뭘 굳이 보러 나옴?
좋으셨겠다 아주 그냥. 이 집에서 아무도 자길 못 보는데 방학 기간동안 부모한테서 내쳐진 나 덕분에 신나셨겠어 아주.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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