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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구름

<ㄷㄷ썰> 처음 꾼 꿈

정글구름 2024. 4. 8. 05:19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꿈은 악몽이고
이건 내가 4살 즈음 꾼 꿈의 내용이다.

벌건 대낮.
꿈속에서 나는 우리 가족이 세들어 사는 집의 마당에 서 있었다.

멍하니 서있다가 의식을 차린 난 늘 하던대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놀 궁리를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난 다시 마당에 서 있게 됐다.
분명 나는 대문으로 나가는 통로쪽에 있었는데 말야........

그치만 꿈에선 원래 자각이 늦잖아? 그때도 그랬다. 나는 내가 조금 전 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나는 다시 마당에 선 채였다.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을 몇번쯤 겪고 나서야 차츰 정신이 드는 듯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감각이 돌아왔다. 마당을 등지고 통로를 걷는 나를 죽어라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애써 무시했다.

애깃때의 난 집안에서 별로 할게 없었기 때문에, 스프링으로 고정해서 탈때마다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하얀색 플라스틱 목마를 타거나 대문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이번에도 습관처럼 타던 목마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목마를 타려고 가까이 가니 목마가 날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왜 이상하냐면.... 정확히 목마쪽에서 느껴지는 느낌인건 맞는데, 눈으로 볼때 목마에 페인트로 그려진 까만 눈은 전혀 날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는데도 이 녀석이 날 째려보고 있다는.... 감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무시하려 했다. 시치미를 떼고 목마에 올라탔다. 목마가 내뿜는 감정은 더 강해져갔다. 굉장한 적의가 느껴진다.

"너 오늘 왜 이러냐?"

목마에서 내리며 투정하듯 말했다. 난 애기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면 될 것 같았다. 걸음을 옮겨 주인집 할머니댁 방으로 가려 했다. 근데 내 몸은 다시 마당에 서 있게 됐다. 어느순간 또 이 상황인거다.

이곳을 벗어나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괜히 뛰거나 소리지르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자연스러운 척 대문쪽으로 갔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또 마당에 서 있는 채로.....

다시 대문쪽 통로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데 원위치로 돌아가게 됐다.

계속 계속 원 위치. 그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위치여야 한다는 듯 난 다시 밝은 빛이 내리쬐는 마당에 서있다.
대문을 열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다음 장면도 그랬다.

이쯤되니 깨달았던건..... 누군가 원치 않는 거다. 내가 원래 위치로부터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는 것을... 게다가 굳이 거리가 멀어지지 않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 몸은 마당에 서있게 됐다.

13번 부터는 몇번이나 이 상황이 반복되는지 세질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그럴 정신도 아니었고 이 꿈이 반복되는 횟수가 20번, 30번이 넘는다 한들 깨나는게 가능은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어떻게 깨더라?
꿈에서 깨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 꿈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내 의지로 깨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깜깜한 밤에 눈을 감았다가 뜨면 아침이었던 것만 겨우 기억이 났다. 꾹 감았다가.... 떠봤다. 뭔가 잠잠했다. 하지만 여전히 꿈속이었다.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돌아다니려 했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난 적도 없는데 내가 마당에 서있다고....?

그러고보니 또 이상한게 있다.
지금은 대낮이다. 그리고 이 집엔 우리가족만 사는게 아녔다.
주인집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삼촌이라 부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들도 있다. 마당 옆에 있는 방에는 아줌마가 살고 있고 마당 맞은 편 문을 열고 가면 거기에도 하숙방들이 있었다. 하숙방에는 늘 젊은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근데 지금 하나도 없어?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이 집엔 늘 개가 있었다. 개집은 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개집에 개가 없었다. 사람도 없고 개도 없다. 심지언 새 우는 소리 조차 없다. 4살 밖에 안된 어린애를 집안에 덩그라니 두고 단체로 어디 가기라도 했단 말야?

난 엄말 찾았다.

"엄마..."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아무 대답도 없다.
울먹임을 참으며 신발을 신은채 마루로 올라갔다.
안방을 돌아다니고 벽장문도 열어보았다.
컴컴한 거실도 살폈다.

그러다가 거리가 멀어진 모양인지 난 다시 마당으로 소환됐다.

내가 왜 이런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 할머니...."

이젠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울먹거리며 보채듯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당으로 원위치 되어도 다시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럴수록 차츰.... 시야도 청각도 혼란스러워졌다.
주변이나 시야 사방에서 이상하고 알록달록한 빛이 반복해서 나타나며 검은 그림자가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 노려보는 시선은 점점 강해졌고. 그것에 삼켜지는 듯 한 감각에 공포심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반복
반복
얼마나 더 반복됐는지 모른다.
치솟았던 감정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나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대문을 몇번이나 열었는지 모른다. 열었다고 생각했고 손이 문에 닿자마자인 순간이기도 했다.
열고 또 여니, 아주 그 다음부턴 계단에 올라가기도 전에 마당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그래도 컴컴하고 막혀있는 집이 더 무서웠으므로.... 포기하지 못한채 계속 대문으로 향하던 그때.

"애기야~~~~"

대문쪽으로 가는 통로를 지나던 내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나....?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아보려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와중

"애기야~~~ 여기야~~~~"

분명, 목소리는 들린다. 나는 다시 두리번거렸다.
지붕 탓에 그늘진 거실이며 마루.... 마당.... 그리고 마당옆에 있는 부엌.

옛날식의 작은 부엌....문은 두꺼운 나무 판자를 엮어 만들었기에 어린 내 힘으로는 쉽게 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안에는 솥을 앉힐 수 있는 아궁이가 두개 있었고 문 맞은 편에는 아주 작은 쪽창이 높게 달려있었지만 낮에도 부엌은 어두웠다. 그래도 부뚜막은 어렴풋이 보이는 수준의 어둠....

내가 마당에서 돌아다니며 부엌 안쪽을 기웃댈 때 마다 할머니께선 위험하니까 들어가면 안된다며 문을 닫아두시곤 했다. 그런데 꿈 속에서 본 부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역시나 어둡다. 부뚜막과 창문밖에 안보인다.
이 와중에도 여자 목소리는 들려왔다.

"여기야~~ 애기야~~~ 이쪽이야~~~~"

역시 부엌에서 나는 소린가....?
나는 부엌을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없던 여자가.... 스스륵하니 나타났다.
까만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젊은 여자의 상반신이 보였다.

그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여기야~~~"

날 향해 과장된 손짓을 하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애기야~~~ 일루와~~~~"

무섭다. 그리고 위험하다. 그 여자는 그저 날 부를 뿐인데.... 이 꿈에서 날 제외한 유일한 사람인데.... 그치만 가까이 가면 죽을 것 같다. 본능인냥 느껴졌다. 그 여자가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 건가? 아니면 그 여자가 날 죽일것 같아서 무서운건가...?

나는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는데.... 아마도 그런데
조금씩... 내 발은 그 여자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어쩌면 누군가가 부르니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 일수도 있다.
거리가 아주 천천히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여자의 목소리는 고조되어 갔다.

"그래~~~~~~ 애기야~~~~!! 일루와~~~!!!!"

거의 비명지르다시피 하는 목소리. 말투며 표정이며 손짓 모두가 상냥한 척 연기하는 거란 걸 안다. 특히나 그 표정은.....

아.... 귀신들은 웃는 모습이 다 똑같구나.....

어마어마한 분노를. 악의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죽이고 싶어하는 주제에
웃고 있어
어쩌면 곧 날 죽일 수 있으니까.... 그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기뻐서 웃는걸까?
그래. 그런 감정에서나 나올 법한 표정이겠다.

홀렸을지도 모르지. 내가 움직인건.... 그런데 어느순간 부터는....그렇지 않게 됐다. 난 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안달이 나서 날 계속 불렀다. 화를 아무리 억눌러도 새어나온다.

"어서와~~!!!!!!!!!!!!!! 빨랑와~~~!!!!!!!!!! 애기야~~~~~~~~~~~~~~!!!!!"

나는 여전히 저것이 무섭다. 저 여자가 뭔진 모르겠는데 너무 무섭고.... 가까이 가면 난 분명히 죽는다. 죽는다.
그런데 지랄맞은 호기심이.... 날 다시 움직이게 했다.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정말 죽을까?
죽는다면 어떻게 죽게 될까?
그게 궁금해지는 거다......
그래서 다가갔다.
천천히... 서서히....

여잔 신이 나서 비명 지르듯 외쳐댔다.

"그래~~~!!!!! 조금만 더와~~~~!!!!!!!!!!!!!! 애기야~~~~~~~~~~~~!!!!!! 좀만 더오면 돼~~~~~~~~~~~~!!!!!!!!!!!!!!!"

그런데 그 여자 왼편에.... 누군가 또 스르륵 하고 나타난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하얗게 샌 머리를 한 할아버지다. 조선시대 사람처럼 이마에는 하얀 띠를 두르고 있고 새하얀 한복을 입었다. 그 할아버지는 날 보고 외쳤다.

"오면 안된다!!"

나는 잠시 움찔했다.

"오지마!! 오면 안돼!!!!"

여자는 날 부르고 있고 할아버지는 내게 오지 말라고 한다.
혼란스러웠다.

감각을 따르자면 할아버지 말을 듣는게 맞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

'내가 애긴데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러시지?'

반발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쫌만 더!!!!!! 쫌만 더 오면 돼!!!!!!!!!!!!!!!!"

"오지마라!!! 오면 안된다!!!!! 오지마!!!!"

어느정도 가까워졌을 무렵

할아버지는 내가 말을 하도 안들으니까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여자의 허리춤을 껴안고 뒤로 몸을 빼셨다. 그러자 여자는 "꺄아아아아악!!!!!!!!!!!!!!!!!" 라며 비명을 질렀고 둘은 동시에 사라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텅빈 부엌을 보고 있다가 눈을 떴는데
방의 천장이 보였다.
숨을 고르며 서서히 감각을 느껴봤다.
봄날의 온도.....  천장을 비추는 태양빛.....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소리가....

손끝을 움직였다.
몸을 일으켰다. 전날 할머니 방에서 잤던 모양이다.
마루에 서서 마당을 보니 아줌마와 엄마, 할머니가 보인다.

나는 갑자기 돌아온 현실을 편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것도 꿈 속이면 어쩌지?
한동안 사람들이 움직이는걸 보다가 난 마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목마쪽으로 다가갔다.
늘 통로에 놓여있는 목마... 가까이 가서 그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꿈에서 처럼 공포심은 들지 않았다. 날 째려보는 기분도 안 느껴진다.
시험삼아 타봤다.

끼익- 끼익-.

역시 무섭지 않았다.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너 그땐 왜 그랬어?"

속으로는 '내가 너무 많이 타서 얘가 날 싫어하나....?' 라고 생각했다.

대문을 흘깃 봤다. 꿈에서 깨난게 맞다면.... 나갈 수 있을 거야.
계단으로 올라가 눈을 감고 문을 끼익-..... 열었다.
눈을 못뜨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떠봤지만 현실이 맞나보다.
바깥 광경이 보인다. 몸이 집 밖을 나서도 마당 위일까 겁이나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딛는다. 아무일도 없다. 나는 밖에서 돌아다녔고 그렇게 현실에서의 수어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었다. 30번 넘게 반복되었던 악몽탓이다.

어쩌면 자는게 무서워졌을지도 모른다. 다시 그 꿈을 꾸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후로 그 꿈을 꾼 적은 없다.

한 두번 쯤. 꿈에서 그 집이 나왔었는데 엄청나게 큰 여자가 지붕 아래에 있는 날 보며 소름끼치게 웃어댔던 걸 빼고는.....



-소감-

근데 그 할아버지는 누구였을까?
왜 날 구해줬을까? 말도 징그럽게 안 듣는데 ㅋㅋ....어휴 말 안들어! ㅋㅋ 되게 짜증이 나신건지 아니면 다급해선지 목소리에 감정이 계속 실리시는데 ㅎㅎ... 죄송...

근데 어떻게 알고 나타나신거지;; 조상신 같은 건가? 내 후손한테 위험이....!! 아니면 저승에서 그 여자 귀신 옆을 지나가던 유령1 이셨을 뿐인데 귀신년이 자꾸 쪼개며 쳐웃는게 신경쓰여 들여다보니 이승의 웬 애긔를 꾀어내겠다고 개수작 치는걸 알게 된 거임. ㅎㅎ

희안한건, 엄청 오래 된 꿈인데...... 전에는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거든? 사실 이런 꿈을 꾼 기억 조차 없었음. 근데 지금은 너무 자세히 기억이 나.....
할아버진지 할머니인지도 헷갈렸었는데 고함지르던 목소리가 남자같기도 했다 싶더니 할아버지라는 확신을 이제는 한다. 하얗게 몽땅 샌 머리의 기장이 옛날 사람 치고는 짧았던 것도.... 피부는 옷보다 어두운 톤이라는 것도.

그리고 꿈이 중첩될 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던 거며....
좁아지느라 가장자리는 까맸는데 그 까만 곳이 현란한 색들로 어지럽게 반짝이며 일그러지고 있었다는 것..... 마당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공중에 띄워진 시선에서 보고 있던 장면과 내 옆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짐 목마가 날 약올리는 듯 깔짝거리며 아지랑이처럼 휘어지듯 움직이고 있었던 것....

여자 커신이 날 부를때 난 내 발을 보고 있었다는 것. 내 발이 아주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 그리고 커신의 표정과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눈동자가 없었지. 그랬어.

거듭 쓴다고, 계속 생각한다고 해서 기억이 더 잘 나는건 아닐텐데 신기하구만.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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