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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구름

<ㄷㄷ썰> 연못이 있는 집

정글구름 2023. 12. 16. 00:14

중딩 땐가 고딩땐가에 살던 집은 단독 주택이었고 마당에 영문 모를 인공 연못이 있었다. 연못은 시커맸고 물은 썩어 있었다. 이게 찝찝하고 더럽게 인상적이라 그 집을 이 문장으로 기억한다. 연못 있는 집.

처음 이살 갔던 날,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장실 천장과 벽 사이에 끼워놓은 신문지였다.
길고 투명한 봉투에 신문지를 잔뜩 구겨 넣은 것이다. 신문지에 인쇄 된 사진이며 글의 명암은 마치 해골같은 모습의 남성처럼 보였다.

그 집에 살며 내가 참 무서워 했던 장소 중 하나는 내 방에 있는 창문이고 또 하나는 그 화장실이었다.

가윌 한참 눌리던 때라 자는 걸 기피하곤 했다.
찌는 여름이면 새카만 창에서 보이는 경치를 자꾸 살폈다.
창문 근처의 앙상하고 기괴하게 마른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마다 공포심에 떨었다.

어느날 여름밤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그때도 잠 들기를 거부했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가 텅 빈 골목길에 서서 맞은 편의 들판을 봤다.
서늘한 바람이 뭉탱이로 불어오는게 너무도 슬펐다.
경계철망이 쳐진 들판의 너머로 가는 상상만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두려움 없이 잠을 청하는데 나는 늘 무서워서 피로를 외면했다.


추석인지 설날인지 모를 명절 연휴. 나는 시골에 가지 않겠다 버텼고 엄마는 화를 내며 동생이랑 같이 시골로 갔다.
하나뿐인 컴퓨터를 실컷 할 수 있다는 자유감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 날은 자지 않을 작정이었고 난 온라인 게임을 켰다.

새벽인지 늦은 밤인지 모를 시간....

너무도 졸렸지만 꾸역꾸역 게임을 했다. 내 레벨에 맞는 사냥터를 알려주겠다는 게임 속 지인을 자동 클릭으로 따라가며 따분하게 키보드나 치고 있었던 그때

갑자기 뒤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내 방의 창문은 화장실 문과 마주 보는 구조였고 컴퓨터 책상은 늘 그랬듯이 창문 앞에 붙여놨었다. 그래서 책상 의자에 앉으면 화장실 문을 등지게 된다.
그런데 지금 그 화장실 안에 뭐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생각....?
생각일까?
일단 상상은 아니다.
맹하니 모니터 속 황색 들판 위 캐릭터를 응시하던 와중 난데없이 소름끼칠 상상을 왜 해? 내가. 졸려 정신 없는 상탠데

내 육체는 분명 의자에 앉아 화장실 문을 등지고 있는데도 어째선지 머릿속....? 혹은 눈에도 영혼이 있다면 눈의 영혼은 닫힌 화장실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거다.
화장실 안에 있다.
그걸 느껴서 소름이 끼친거고....

이때까지만 해도 몸을 돌려 화장실 문을 확인 할 순 있었다. 그치만 보고 있어도 시야로는 특이한게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이 지속되가면서 소름돋음이 더 강해졌다. 이제 더 이상, 화장실 문을 보고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공포심이 다가오는게 느껴진다.

몸을 다시 돌려 모니터를 보며 괜히 마우스를 따각거리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 있는 무언가는 화장실에 달린 불투명 창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디밀었다.
불투명하니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일리 만무한데도 그러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제발 그러고 말면 좋았겠는데.... 그건 문을 살짝 연다.
문을 연다고 난 느꼈지만 실제로 문을 여는 것 같진 않다.문 여는 기척 같은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절대 뒤를 돌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어쩌면 그 귀신은 문을 열었다기 보다는.... 굳이 열지 않고도 머릴 빼꼼거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조그맣게 열린 틈으로 머릴 빼서 내 뒷모습을 빤히 보는데 점점 더 큰 소름이 날 장악한다.

그 귀신은 지가 이러고 있는데도 내가 관심조차 안주는게 희안했던 모양이다. 성격마저 알겠다. 다소 맹하다.
부디 나오지 않길 바랬지만.... 어느새 귀신은 문 밖으로 나와서 방안에 서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여자귀신이다. 까맣고 긴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전형적인 귀신....
얼굴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귀신이 내게로 점점 다가왔다. 아주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몇번이나 뒤돌아 볼 객기를 부릴까 하고 고민했다.
내게 절대 도움이 안되는 객기.....
무서워서 졸도 해버릴 것 같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지는 것 같다는 유치한 자존심의 객기.
하지만 난 그날 지는 쪽은 택했다.

귀신은 내 바로 뒤까지 왔다.
그 상태로 한동안 서서 날 내려다 보는게 느껴졌다.
무서워 죽겠어서 게임 속 지인에게 채팅으로 말이라도 걸며 귀신에게로 집중 된 내 정신을 돌리고 싶었다.

"사냥터 아직 멀었어?"
"진짜 오래 걸리네....."

졸려 뒤질 것 같은데 자면 가위에 저 귀신이 온전히 다 나올 것 같아서 도무지 졸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귀신은 내 오른쪽 어깨 근처까지 자기 고갤 내리고는 내 얼굴을 한번 봤다가 모니터를 들여다 봤다가 키보드도 봤다가 다시 내 얼굴을 보다가 모니터를 보는 행동을 아주아주 천천히 여러번 했다.
난 눈알을 철저하게 모니터와 키보드에 고정시키며 귀신을 외면하려 애썼다.

그리고 어느샌가 귀신은 사라졌다.
사실 이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흥미를 잃어서 천천히 화장실로 되돌아갔는지 아니면 그냥 스르르 하고 공중분해 된 건지를....

귀신이 이 방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느낌으로 알 수 있었으나....
난 30~40분 정도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
날 속이는거면 어떡해?

한참이나 지나서야 뒤를 돌아 볼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화장실 문은 닫혀 있었다.



-소감-

보고 있지도 않은데 보인다는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커신이 근처에 있다는게 느껴질때면 다른 일에 집중이 안된다. 백귀야행의 리쓰가 학생때 공부를 하려고 교과서를 보면 요괴들이 나타나 훼방 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약간 비슷한가? 머리가 장악당하는 기분임. 커신들의 생각은 너무 강해서 내가 딴 생각을 하기 힘드렁,,,,

-20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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