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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썰> 족자 본문
아는 분에게 받은 족자는. 방에 걸면 가위도 악몽도 안 꾼다 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기대로 방 벽에 걸어 둔 족자. 당연하게도 효과는 없었다.
언젠가 부터는 내 방에 남자가 서 있는게 느껴졌다. 그는 20대 초반 즈음으로... 키 170정도에 다소 마른 체형. 지극히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지극히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유령. 얼굴은 보려고 애를 써도 블러처리라도 된 것 마냥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어떨땐 유령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려고 하면 눈이 그 부분을 좇고 있음에도 머리가 멍해지는 듯 한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얼굴이 있긴 한데 내가 볼 순 없는 건지. 있긴 한데 보여지고 싶지 않아서 숨기는 건지. 유령이 그 정도만 구현했을 뿐인건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눈으로 보는게 아녀서 일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내 방에만 있었다. 족자 앞에 서 있기도 하고 장롱 앞 구석에 서 있기도 했다. 어떨땐 내 쪽을 향해 몸을 튼 채로 있었고 어떨땐 나완 상관없이 멀거니 서있곤 했다. 난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몰랐다. 늘 가만히 선 채였으며 책상이 놓여져 있는 위치임에도 유령답게 사물을 뚫고서 위치했다.
날 보는 듯한 시선을 종종 느끼곤 했지만 내 방에 내가 모르는 유령이 몇이나 더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은 못하겠다만 그 남자 방향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노라면 뒤쪽 벽 앞에 서서 날 멀거니 보는 듯 했다. 구석에서도 날 보고 있다. 그러나 한번도 눈이 마주친 적은 없었으며 이 집에서 가장 뚜렷이 느껴지는 존재임에도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았다.
불만이 있다.
왜 난 내 방에서 조차. 인간아닌 것에게 조차 프라이버시를 침해 당해야 하는가..... ㅡㅡ
지금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이 새끼가 없어져서 모르는게 아니라 귀기를 못 느끼게 됐기 땜에 못 느끼는 거다. 편-안
아 그리고 이 유령은 족자 앞에 서 있었다. 귀신 쫓아 준다며 ㅡㅡ
.....초음파 벌레 퇴치기 같은 족자였다. 근데도 난 그 족자를 오랫동안 버리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잘못 느꼈을 수도 있잖아...? 유령이고 뭐고 없이 싹 퇴치 당했는데 나 혼자 망상으로 본걸지 어떻게 앎. 귀신을 보거나 느낄 때 마다 생각하지만.... 내 뇌가 일으킨 착란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겸해. 물론 뒤지게 무섭지. 근데 뇌 내 망상으로 뒤지게 무서운 걸 수도 있어.
됐고. 그 족자랑 그 새끼 그려봤다.
(아쉬우니 한장 더. 좀 구부정하게 그려짐)
내가 너무 미형으로 그렸네. 참 별 볼일 없는 청년이었는데.....
반팔 티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안 신었지만 양말인지 맨발인지는 기억이 안남.
효과완 무관하게 저런 주술템 좋아한다. 촌스럽지도 않고 제법 예뻤고.... 빨간색으로 쓴 범어? 암튼 한자 서너개를 하나로 묶어 놓은 듯 한 글도 흥미로워서 좋았는데 무쓸모라니 ㅠ.... 족자는 전에 그린 달마, 호랑이 피포페인팅과 함께 다 찢어 버렸음. 후론 전 처럼 지독한 가위나 악몽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당연케도 안 겪는건 아님.
-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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