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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구름

<ㄷㄷ썰> 7살때 살던 집

정글구름 2024. 4. 8. 05:18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전학을 가게 됐다.
전에 살던 집엔 내 방이 따로 있었는데 이번엔 단칸방으로 가게 되다보니 책상이며 옷장 등의 가구는 전부 다락방에 올려두고 살아야 했다.

아직도 그 집이 눈에 선하다.

한옥과 양옥이 한국식으로 섞여 있는 주인집은 디귿자 모양의 집 맨 끝부분을 세놓았다.

우리가 쓰는 공간은 방 한개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부엌.
부엌바닥은 시멘트여서 항상 신발을 신고 가야했고 화장실은 마당에 있었지만 그 마저도 자주 막힌다는 이유로 담 너머의 푸세식 화장실을 써야했다.

집 뒷편 즈음엔 작은 산이 있었고 산 맨 위에는 절이 있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절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당이라고 했다.
동네에는 큰 개를 많이 키웠다. 개가 점프만 하면 훌쩍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울타리 안에 저마다 개를 키웠다. 조금만 소릴내도 그 작은 동네의 모든 개가 짖어댔다.
무섭고 음침하고 어두운 동네였다.
그곳은 대낮이라고 해도 음산했다.

이런 집에 살게 된게 여러모로 불편하긴 했어도 우울하진 않았다.
그건 내 습성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책상과 책장이 다락방에 있는건 마음에 안들었다. 다락방으로 가는 계단은 방안에 있었다. 하지만 다락방엔 자주 갈 수 없었다.

유령이 있어서....

다락방에 있는 유령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까맣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성인여자라는건 알겠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 모습을 묘사할 수 있냐면.... 그렇게 느껴진다.
너무 궤변같은데 진짜 그렇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이상한 현상을 수시로 겪는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

눈에 보이는건 아냐. 근데 어떤 모습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알겠고... 나이대도 구분 가능하다. 웃고 있는지 무표정인지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유령을 느낌으로만 파악하는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경우도 있다.
어느게 더 무서운지는 잘 모르겠다.

다락방의 그 여자는 다락방에 누가 오는걸 몹시 싫어하는 듯 했다.
말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유령이 갖는 감정?도 느껴진다. ㅡㅡ
그치만 생각이 와닿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 여자의 생각은 잘 느껴졌다.

오지 말라는 것 같았다. 근데 안 갈 수가 없잖아.... 내 교과서며 계절옷도 전부 다락방에 있다고.....
이사 첫 날엔 아빠랑 다락방에 올라가 얘길 하기도 했지만 아빤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도 동생놈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나만 느껴.

그 여자는 항상 다락방 저 구석 끝에 가만히 서서 이쪽을 향해 서있다.
내가 다락방에 들어가면서 부터 살기를 뿜는다.
오래 있을 수록 살기가 강해진다. ㄷ ㄷ
그래서 다락방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버텨보려고 했는데 무서워.... 나한테 무슨 짓 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래서 결국 매번 ㅈㅈ 치고 내려오게 됐다.

다락방엔 내 물건들이 있으니 내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숙제도 놀이도 다락방에선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턴가는 다른 유령이 눈에 보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안방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는데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어항속에 웬 여자 머리가 잠겨있는 것이다. 갑작스런 아이컨택에 난 너무 놀랐다. 비명도 못 질렀다.

우리 집에 있는 어항은 작고 둥근 모양이 아니라 횟집에서 으레 보이는 직사각형의 큰 어항이었다. 거기엔 작은 열대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물 속, 한 가운데에 비스듬히 누워 내쪽으로 머리통을 완전히 돌린채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 이빨이 훤히 다 보일 정도였어. 그리고 눈엔 검은자위가 없었다.
희번뜩하게 뒤집어 깐 듯 한 눈인데도... 눈동자가 없는데도....
날 똑바로 보고 있단 생각뿐이었다.

그런식으로 미소 짓는 사람은 없다.
그 후로 한참이나 지나 알게 된게 있다면 유령들은 사람과 다르게 웃음 짓는다는 것....
설명하는걸 노력해보자면,
화가 몹시 난 상태로 웃는거다. 아주 환희에 차서..!!

여튼 그 유령을 보며 내가 한 생각은

'내가 보고 있는걸 들키면 안될 것 같아.' 였다.

왜인지 모르게 말야.... 무슨 경험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여기서 비명을 지른다거나 놀래서 행동이 흐트러진다거나 울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어. 그리고 내가 저것을 보고 있음을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도 안될 것 같아.
근데 말해봤자 안 믿어줄게 뻔해서 관둔것도 있다.

그렇게 한참을 마주치고 있었다.
나는 애써 저걸 못 본 척 하고 싶어서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지만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갤 틀어서 날 바라보는 여자.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자길 보고 있단걸.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 후로도 하교해서 안방에 들어올때면 꽤나 높은 확률로 그 유령을 보게 됐다. 이 상태로 거의 매일을 충격 받으며 지내다보니 어느날 부터는 어항 속 객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ㅡㅡ

마찬가지로, 검은자위와 몸뚱이가 없이 머리통만 덜렁 있는 남자유령이었다. 둘은 나의 귀가를 어항속에 잠겨진 채 웃으며 반겨주었다. 하나가 둘로 늘었지만 이쯤되니 적응이 꽤 되었다.(물론 무서움)

아주 그냥 나중엔 집에 나밖에 없을 때만 보이는게 아니라 온 가족이 모여있을때도 보였다. 그럴때면 가족들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도 어항엔 관심 없었다. 어항 속 물고기들의 동태도 살펴봤는데.... 어땠더라...? 아마도 유령들을 피해 유영하는건 아닌 듯 했다. 무딘 생명체들 사이에서 혼자 식겁하며 일상을 보냈다. 아무도 저걸 못 보는게 이상했지만 뭐 어쩌겠어.

어쩌면 저건 나만 보는 환각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현실부정은 아니다. 보이는데 어떻게 부정해?
그래서 뒷산의 절에 올랐다. 계단이 가파르고 높더라.... 그래도 참고 올라갔다. 스님들은 뭐 그런걸 잘 알아본다고 어디서 줏어들었나 보다. 내가 정말 유령을 보는거라면 뭐 영험한 스님이 넌지시 조언이라도 해주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놀랍도록 아무도 관심을 안 갖더라...... 그래서 환각인가보다 하며 집에 왔지만 여전히 어항 속에 있잖아..! 환각 취급 하고 싶어졌지만 보이는데 어떻게 부정하느냐고...?

그럴때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갔다.


동네 남자애들이 날 괴롭혔다. ^^
그래서 집안으로 피신하면 유령이 날 맞아줌 ㅡㅡ.... 무서워서 사람들과 있고 싶어했지만 동생새끼 때문에 서터레스..... 차라리 혼자 있고 싶어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다락방 유령이 꺼지라고 압박을 준다. 학교가니까 유령이 안보이는건 좋은데 애들한테 시달림. 개피곤....

사람도 유령도 날 너무 힘들게 하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 몰라.

이러한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문득 빡이 쳤다. 그 빡침은 유령한테 다소 개기고 싶단 생각이 드는 정도였기에 집에 와 바로 다락방에 올라갔다. 역시 저 구석에서 부터 내게 경고를 하며 다가오는 유령.... 억울하고 분해서 꾸역꾸역 자석 낚시를 하며 버텨봤다. 여자가 바로 옆까지 온 것 같았다. 그대로 서서 내게 빨리 나가라고 머릿속이 시끄럽게 화를 내는데.... 아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십여분이나 삼십분 정도는 버틴 것 같다. 내려가는데도 뒷통수가 따가웠다.

다락방 문은 장짓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문 처럼 철컥 하고 닫히지 않고 문틈에 끼워서 닫는다. 근데 어느날 부터는 그 문이 스스륵 열렸다. 아무리 닫아 놓아도 다시 열리곤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엄마한테 말했다. 문이 자꾸 열리는데 닫아 달라고..... 엄마도 아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닫곤 했지만 그래도 문은 다시 열리곤 했다.

어느날은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캄캄한 밤인데 어린애가 무슨 일로 혼잔지 기억이 안난다. 티비를 켜놓은채, 무서워서 잠도 못 자고 버티는데 다시 다락방 문이 끼익 열린다. .....

이 야밤에 혼자일 뿐이라 공포심를 극도로 느껴 상상력이 발동됐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락방의 그 여자가 계단으로 한발 한발... 서서히 내려오더니 마지막 계단 위에 가만히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치도록 무서운데 기절을 안하니 환장할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여자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 날은 아무래도 동이 터올때야 잠에 들었을 듯 싶다.  

어느날 일요일. 집엔 엄마와 나 뿐이었고 엄만 집안을 청소중이었다. 한가하길래 걸레로 마루를 닦는 엄마한테 가 괜히 이런 저런 말을 걸고 씹히던 와중. 마루 저 끝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 유령의 형체가 보였다. 그 여자는 아주 무섭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걷지도 않으면서 아주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다. 내 뒤는 막혀있어 피할 수도 없었다. 무서워서 엄마쪽에 붙으니 엄마가 짜증을 낸다. 유령이 가까워질 수록 나는 못본 채도 할 수 없게 되어서 엄마한테 찡얼거리며 말했다.

“엄마... 저기... 저기 귀신...!”

엄만 내가 가르킨 쪽은 보지도 않고 화를 냈다.

“얘가 왜 이래?? 청소하는데 방해되게!”

난 울먹이며 엄마팔에 매달려 얼굴을 파묻었다. 짜증내며 혼을 내는 엄마보다는 저게 더 무서웠다.

엄만 구석의 마루를 마저 닦느라 날 밀쳤고 얼떨결에 고갤 돌려 마루를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다락방의 여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 집에선 1년 남짓 정도 살았다. 이사하고 나서 부터는 어항안의 머리를 보는 일도 없어졌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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