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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구름

그림 안 그려주기

정글구름 2023. 10. 26. 23:06

그림 잘 그린단 소릴 들을때마다 단 한번도 그 생각에 동의 한 적은 없다. 근래에 들어서나 내가 좀 그리는 것 같다고 생각 할 뿐. 이것도 엄연히 말하면 전보다 나은 실력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함.

어릴 때 부터 그림 그리고 있으면 애들이 와서 잘 그린다고 하며 자기도 한장 그려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기쁘다기 보단 역시나 왜 굳이 갖고 싶어하는지 이해 못할 뿐이었다. 난 언제나 나 좋자고 또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그림을 그린거였기에 주목받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부탁 돌려 거절하질 못해서 그려주곤 했음.

내가 내 실력을 저평가 할 지라도 일단 내가 그린것들이 나에게 있길 바라기 때문에 누구한테 그림을 주는 것도 아쉽지만,

중학생때. 한번은 우리 반 애들 중에 날나리군에 속하는 예쁘장한 여자애가 “너가 아까 하는거 봤는데 나도 한장 그려주면 안돼?” 라고 요청을 해서 난 한시간 공들여 그림을 그려줬다. 고맙다고 가볍게 인살하던 그 애.
한 교시가 끝나고 문득 교실 바닥위에 떨어진 내 그림을 발견했다. 누가 밟았는지 신발 자국과 먼지가 묻어 다소 지저분해진 종이를 털고 다시 그 애한테 줬을때 그 앤 “어? 떨어졌었나? 고마워~” 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림이 한번 더 교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봤을때 좀, 마음이 복잡했다. 두번이나 실수로 내가 그려 준 그림이 바닥에 떨어진다고? 그것도 하루 내에서? 난 더이상 그 애한테 그림을 돌려주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 더러워진 그림을 보니 속상했다. 열심히 한건데.....
그래서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는 날 좀 싫어했던 것 같다. 그냥 펜의 잉크를 몇미리나 쓰며 고생하게 만들고 내 노고를 밟으며 비웃고 싶었던거지. 그 애하고는 이 일 말고도 기분 더러운 기억이 하나쯤 더 있다. 그래서 역시 그 앤 내가 싫었던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일 때문인지 그 후로도 누군가가 내게 그림을 부탁하면 부담스러우면서도 찝찝해하며 거절한다.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정말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약간 즐겁고 신기한 마음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소중히 소장할 만큼의 기분까진 아닌거다. 잃어버려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거나 그런게 있었다는 것 조차 까먹는다. 가끔은..... 마구 그려진 내 그림이 귀한 듯 보관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나 조차도 내 그림에 큰 의미는 갖지 않는다. 그간 그린 모든 그림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다. 손수 삭제한 이유라면 간단하게도 내가 볼땐 영 별로였기 때문인데.... 실력에 비해 눈이 높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 발전하는 것을 기록해둘 생각조차 않는다. 하지만 요즘 그리는 그림들. 특히 프로크리에이트로 그리는 것들은 공을 무지 들이는데다가 이제야 내가 다소 인정할 만큼의 결과물이 나와서 소중해진건데 요즘 그린그림들이 다 좋지도 않다. 그래서 몇갠 버린다.

어쩌면 남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기에 이런것도 같다.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거나..... 과정 중에 버리는 그림이 없어야 한다거나 같은.....

여하튼 그래서 난 그림을 안 그려주려고 하는데 그래픽이라면 내게 온전한 원본이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역시 누구한테 줄 만큼의 것인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저 받아가려고 하지. ㅋㅋ 마치 너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리액션 해 준 내겐 그냥 하나 줘도 되겠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지...ㅋㅋ 사인같은걸로 생각하는 걸까? 아주 손 쉽게 슥슥 하면 끝나는 무언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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